라흐마니노프의 생애
라흐마니노프는 1873년 4월 1일 러시아 제국 벨리키 노브고로드에 있는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빼어난 재능을 보였던 그는 부모로부터 일류 음악교육을 받는다. 1888년부터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피아노 외에 타네예프, 아렌스키에게 작곡법을 배웠다. 처음에 그는 뛰어난 피아노 실력을 발휘하며 순탄하게 음악가의 길을 가는가 싶었으나, 곧 깊은 슬럼프를 맞았다.
작곡가로서 회의를 느꼈고 음악적으로 완전히 무기력하고 의욕 상실의 시기에 빠졌던 것이다. 우울증이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심각한 상태에서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스물네 살이라는 젊은 시기에 찾아온 이 병으로 그는 최소한 3년간의 극심한 기력상실 상태에 빠졌다. 저금도 음악적 영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실력은 있었지만 새로운 창작을 위한 단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1901년(28세) 암시 요법에 의해 겨우 회복될 수 있었던 라흐마니노프는 명작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완성하여 글린카(러시아)상을 받았다. 1906년 드레스덴으로 옮겨 작곡에 전념, <교향곡 제2번>, 교향시 <죽음의 섬>을 완성했다. 1908년에 귀국, 이듬해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는 한편 <피아노 협주곡 제3번>(1909)을 뉴욕에서 초연했다.
1910년부터는 귀국하여 모스크바 대극장, 마린스키 극장의 지휘자도 역임했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핀란드로 망명해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그 이후에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연주와 창작활동을 했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이 곡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그 강렬함에 매료된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피아니스트는 큰 손으로 피아노의 건반을 마치 쥐어 뜯어내듯이 강인하게 한 음 한 음을 혼신을 다해 내리꽂는다. 연주장 전체가 떨리는 듯한 강렬한 전율이 다가온다. 그리고 이어 오케스트라의 총주는 느리게 그러면서도 가슴을 뒤흔들 듯이 장중한 멜로디를 토해낸다. 이처럼 강렬하고 자극적인 곡은 별로 없었다.
듣는 이의 심장과 영혼을 송두리째 휘두르듯이 조금의 틈새도 주지 않으면서, 홍수 때의 폭포수가 바다를 향해 달려가듯이 그렇게 흘러간다. 러시아의 강물을 연상시키는 볼륨 넘치는 오케스트라 위로 화려하기 그지없는 피아노 소리가 건반 위로 격정적으로 흐르는 곡. 이것은 라흐마니노프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곡이 되었다.
미국으로 망명 이후
라흐마니노프는 1918년 이후 미국에서 거주하며, 적은 수의 작품만을 작곡하였다. 급격히 변해가는 음악계에서 후기 낭만 중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그로서는 장 시벨리우스가 그러했듯 점진적 절필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미국으로 망명 간 이후 소련 정부와 그와의 관계는 대체로 나빴지만 그래도 조국이라는 생각은 있었는지 말년에 독소전쟁이 터지자 소련군을 돕기 위한 콘서트를 열어 그 수익금을 소련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소련 당국의 요청으로 귀국을 고려하였던 듯하나, 결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1943년 3월 28일에 미국 베버리힐즈에서 흑색종을 사망하였다.
라흐마니노프의 큰 손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했다. 실은 먹고사는 문제가 너무 큰 나머지, 2-3년 정도의 연습을 통하여 정식으로 연주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극악의 난이도의 피아노 곡들을 써대면서도 본인은 스스로 작곡한 곡들을 쉽게 소화해 냈는데, 손이 매우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알려져 있다.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녹음한 것을 들어보면 안 그래도 빠른 초반의 피아노 전개가 워낙 빨라 산만파게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이런 큰 손은 마르팡 증후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한데 일설에 따르면 엄지로 ‘도’를 짚은 상태에서 새끼손가락으로 다음 옥타브의 ‘라’를 짚을 만큼 길었다고 란다. 손가락을 완전히 펼쳤을 때 대략 30cm 정도의 길이가 나왔다는 얘기가 있다. 이와 더불어 손가락의 관절도 굉장히 유연해서 오른손 2, 3, 4, 5번 손가락으로 도-미-설-도의 C코드를 짚은 뒤 엄지를 손바닥 아래로 밀어 넣어 1옥타브 위의 미를 짚을 수 있었다.
비평가들의 비난도 있었지만, 라흐마니노프는 20C 초반에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다. 그는 자신에게 명성과 부를 안겨준 미국을 중심으로 주로 활약했다. 결국 근 미국에 귀화하여 캘리포니아의 풍요로운 환경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러나 50세경부터 그는 미국의 생활방식에 적응하지 못했다. 향수병으로 힘들어했고, 우울과 고통 속에서 여생을 보냈다. 우울증이 재발한 것마저도 그가 존경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뒤를 따랐던 것이다.
대표작품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 Op.18
피아노 협주곡 제3번 d단조 Op.30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a단조 Op.43
전주곡 c#단조 <모스크바의 종> Op.3-2
프렐류드 O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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